일기

루마니아 - 어마어마한 하루

그림그리는돌고래 2020. 2. 13. 23:18

풍족한 아침식사. 식빵에 버터 발라 먹는게 너무 맛있다. 또 4장 먹음.

  씨기와 나는 잠들기 전에 다음날인 토요일을 어떻게 보낼지 얘기를 했다. 그는 여러 번 집안 여기저기의 루마니아 지도를 보여주면서 각 지방의 특징에 대해 얘기해 주었는데, 지금처럼 겨울이 아닌 다른 계절에 다시 오게 된다면 캠핑이라던지 아니면 그냥 짧은 여행으로라도 가 볼 만한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되었다. 그건 그렇고, 토요일에 씨기가 나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던 곳은 투르다에서 차를 타고 조금 남서쪽으로 내려간 헝가리마을이었다. 마을로 가기 앞서 내가 파머스마켓을 보고 싶다고 해서 잠깐 들렸다.

겨울이어서 축소 운영되고 있었지만 잠깐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씨기는 파머스마켓이긴 해도 겨울에 나오는 작물들은 아무래도 하우스 농산물들이기에 굳이 찾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가운데 사진에 보면 바스켓 안에 절인 양배추가 있는데, 양배추롤이라고 동유럽 전역에서 보이는 사르말레라는 음식이 저렇게 숙성된 양배추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해서 신기했다. 어찌보면 김치 발효와 마찬가지의 원리일 것 같다. 그는 시장에서 나오는 길에 천연꿀을 샀다. 사장님과 오래 대화를 나누던데 그의 아들들이 숲으로 트럭을 타고 다니며 각종 꿀을 채집하여 판다고 한다. 그가 구입한 작은 꿀도 forest honey 의 한 종류였다. 이 다음날 아침에 토스트에 발라 먹어보았는데 진짜 맛있었다.

헝가리마을로 가는 길에 들른 Cheile Turzii 협곡

  헝가리 마을로 가는 길에 그가 보여줄 곳이 있다며 잠시 차를 세웠다. "나는 여기 잠시 차 안에 있을게. 저기 살짝 올라가서 사진 많이 찍고 와." 그는 이미 한 1000번쯤 와봤다는 얼굴로 방향을 가르켰다. 투르다 주변의 관광명소인 큰 협곡이었다. 사진 상으로는 협곡을 이루는 두 산이 가까워보이지만 가깝다기보다는 크기가 워낙 크니까 CG 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거다. 구불구불 협곡으로 가는 도로가 아래로 펼쳐지는데 그 높이감 때문에 안전한 곳에서 사진을 찍는 것임에도 조금 아찔한 느낌이 들었다. 사진이 매우 뿌옇게 나왔는데 렌즈에 뭐가 묻은 것이 아니라 이때 날씨가 쨍하지 않아서였다. 커다란 저 자연 병풍에 혼자 잠시 멍을 때리다가 내려왔다. 자연은 정말 위대해...!

  운전을 계속하며 씨기는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실업률, 한국 여성의 사회 진출 수준, 근무 환경, 학교와 학원 문화, 아이돌 자살사건 등등등. 모두 긍정적이지 못한 분야들이고 말하면 할 수록 그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왜 아무도 반기를 들지 않는 거야?" 하며 의아해했다. 말하는 나는 답답했지만 그만큼 그가 우리 사회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었으므로 대화 자체는 매우 맘에 들었다. 아방한 태도로 케이팝과 같은 대중문화에 빠져있거나 한국여자들은 매력있고 예뻐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어서 오히려 즐거웠다. 그는 매일 아시아 관련 뉴스를 접하고 있는데 자의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그저 쇼킹한 뉴스가 뉴스홈 메인에 떠 있어서 알게된다고 한다. 

헝가리식 주택(왼), 마을 한가운데 놓인 약수터(?)

  겨울이라서(그는 내가 겨울에 온 것에 대해 수십번 안타까워 했다) 그렇지 여름에는 집집마다 골목 앞에 직접 만든 잼이니 수공예제품이니 내놓고 판매하며, 맥주를 팔기도 해 빈번히 파티 분위기라고 하는 헝가리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전후 남아있는 헝가리인들이 루마니아에 여전히 많이 살고 있는데(실제로 헝가리 밖에 살고 있는 헝가리인이 전체 헝가리인의 20%를 넘는다고 함), 이렇게 헝가리마을이라고 지칭되는 곳은 80% 이상의 주민들이 헝가리 사람이라고 한다.

  씨기가 재밌는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그들은 고집이 세고 보수적이어서 루마이아 사람과 잘 섞이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끼리만 얘기하고 일하고 문화를 만들어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마을 주변의 유명한 산 이야기도 있다. 산 정상에 루마니아인들이 국기를 꽂았는데, 며칠 후 와보니 그 자리에 헝가리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고 한다. 경쟁적으로 두 민족은 그렇게 정상에서 펄럭여야 하는 국기를 서로 빼서 계속 바꾸고 있다. 뭔가 귀여운 충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루마니어도 배우지 않은 채 그들끼리만 뭉쳐 살아 융화되지 못하는 것은 루마니아 사회안에서 종종 문젯거리가 된다고 한다.

  사진의 헝가리 스타일의 집에 대해 들은 얘기를 해보자. 대부분 농업에 종사를 하고 있는 이 마을은 집집마다 건초를 저장하고 말과 돼지를 넣을 수 있는 건물을 뒷편에 따로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문은 건초를 싣고 온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너비와 높이로 만들어진다. 또한 농작물을 말리기 위해 집의 다락층에 공기 순환을 위한 창문을 작게 만들어 놓았고, 절임 음식이나 술 같이 그늘에서 보관이 필요한 것들은 지하층에 들어간다고 한다. 집의 정면 바닥쪽에 작은 문들이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또 집과 집 사이에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은 벽을 보이는 집이 아니라 발코니가 보이는 집의 것이다. 따라서 왼쪽 사진에 보이는 가운데 공간은 오른쪽 집의 대문인 셈. 집의 방향은 정면과 발코니에 햇볕이 들어오도록 지어지는데, 집과 집 사이의 프라이버시를 서로 지키기 위해 발코니는 한쪽만 내고 한쪽은 막힌 벽으로 짓는다.

  나는 헝가리인들이 루마니아에 옛날 문화를 고수하면서 지내는 것도 너무 흥미롭고 집의 디자인도 상당히 재밌었다. 오른쪽 사진의 물덩이는 아주 옛날부터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사진엔 잘 안 담겼지만 물꼭지에서 나온 물이 몇 개의 목욕탕같은 돌수조에 받혀 계단식으로 밑으로 흐른다. 지금은 사람만 큰 플라스틱 물병에 마실 물을 담아가지만(내가 간 시간에도 몇 대의 차가 대기 하고 있었고 다들 대여섯개씩 채워갔다), 예전에는 밑에 있는 수조의 물은 모든 가축들이 자유롭게 마시곤 했다고 한다. 나도 맛이 궁금해 주민들이 물을 채우는데 다가가서 잠깐만 한모금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마셔보았다. 으음! 괜찮음!

전형적인 헝가리 주택의 디귿자형 디자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아마 이런 건물들을 봤을 거야." 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부다페스트는 그냥 너무 큰 도시 중에 하나였고 나는 관광지에만 있었기 때문에. 'ㄷ'형 건물이고 뚫린 쪽은 산을 바라보게 짓는 것. 이상하게 왜 난 이런게 재밌지. 여름엔 저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내천이 있고 발을 담그고 놀 수 있다고 하던데. 겨울에 여행을 시작한 것에 살짝 후회가 생기기 시작했다

깃발전쟁이 일어나는 산이 좀 더 잘 보이는 곳에 가서 찰칵.

  헝가리마을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아까 그 산이 잘 보이는 곳에 시기가 데려다주었다. 이미 여러번 이 가이드를 해온 그는 어디가 인생샷 포인트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원래는 저 들판 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배를 채우려고 했으나 주말이고 겨울이고(하...)해서 닫혀있었다.

신선한 냄새가 나는 건초더미. 엎어진 종 같기도, 케밥고깃덩이 같기도.

  이 건초더미를 설명하면서 씨기는 자기가 어렸을 때 그 위에서 잠을 잤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지금은 그저 시골에나 보이는 옛 방식이지만 이것이 아직도 얼마나 유용하고 과학적인지도 덧붙였다. 듣고 좀 웃었지만 '건초더미에서의 하룻밤' 과 같은 제목으로 비싼 투어 프로그램이 존재하기도 한다고. 더미에서 나는 자연적인 냄새가 심신의 안정에 도움을 준다나 뭐라나.

사르말레와 다진고기음식. 풀은 없었지만 체험이니까 그냥 먹음

  구경이 정말 다 끝났을 땐 배가 무지 고팠고 오는 내내 또 한국에 대해 질문과 답변 시간을 이어갔기 때문에 당이 떨어질대로 떨어져있었다. 음식점 2곳을 더 가보았지만 모두 닫혀있었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1년 내내 닫을 리가 없다는 투르다 소금광산 앞의 식당으로 결국 가서 저녁을 먹었다. 사르말레와 다진 고기 요리를 먹었는데 그나마 양배추가 씹히는 사르말레가 더 입에 맞아 반씩 먹다가 나머지 한조각은 다시 사르말레를 집었다. 

  먹으면서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받았다. 나의 성장 배경, 학교 이야기, 직업 이야기 등등. 계속 말을 하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이런 진지 터지는 대화도 오랜만이라 있는 그대로 거의 다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럴 줄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긴 했다. 그의 프로필을 보면 대충 감이 오는 부분이니까. 마냥 긍정적이고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도 지치지만 내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 내가 속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얘기하는 것도 상당히 힘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음 얘기를 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말하게 되니 생각보다는 상처가 되지도, 힘이 빠지지도 않았다. 참 들은 이야기도 많고 한 얘기도 많은 날이었다. 하지만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 듯 하다. 그가 한국에 오게 되면 질문 폭격으로 되갚아주리라!......가 아니고, 정말 잘 가이드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