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기의 집은 투르다 소금광산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밤새 또 폭풍수다를 하며 루마니아에 대표적인 소금광산이 2개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수도인 부쿠레슈티 쪽에, 하나는 북동쪽 지역에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수도를 갈 예정이었어서 부쿠레슈티에서 갈까 싶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는게 가장 큰 광산이고, 투르다에 있는 것은 가장 크진 않지만 가장 현란하게 잘 꾸민 곳이라고 해서였다. 토요일날 너무 피곤했기도 해서 일요일은 그냥 하루 종일 집에서 쉴까 살짝 고민을 했으나 부쿠레슈티 수도에 있
는 것이 아니라 꽤 먼거리 차를 타고 가야한다고 해서 그냥 투르다 소금광산을 가기로 결정했다. 씨기는 역시 3000번은 와 본 표정으로 1시에 나를 떨궈주었고 마음껏 보고 나오자마자 연락을 하면 15분 내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광산의 구성은 크게 두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저렇게 깊은 계단을 내려가 아주 긴 통로를 걷는 것과, 다시 깊은 계단을 또 내려가 광장같이 넓게 펼쳐진 공간을 구경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순서로 봐야하는지 몰라 일단 아주 긴 통로를 걷기 시작했는데 약 2~3km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허무하게도 그 끝은 또 다른 출입구에 불과했다. 표지판들이 있었지만 지하에선 인터넷이 터지지 않아 번역기를 돌릴 수가 없었다. 끝을 찍고 돌아와 약간의 전시물을 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금도 소금을 캐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 쓰였던 도구나 공간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광산 노동자들이 그 지하에서 예배를 드렸던 걸 상상을 하니까 조금 안쓰러웠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로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을 그린 영화 군함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놀라운 건 이 지하에 말을 데려와 저 커다란 기계를 돌리는데 썼다고 한다. 여기서 일했던 말들은 지상에 다시 올라가 종종 실명이 되곤 했는데, 어두운 지하에서 올라가 갑자기 밝은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눈 가리게 같은 것을 씌우지 않아서라고 한다. 불쌍해.
씨기가 그랬다. "모든 사람들이 지하를 보고나서 올라올 때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할거야. 꼭 내려갈 때 타도록 해." 정말 그랬다. 방문객 수에 비해 엘레베이터가 한번에 수용하는 인원은 한 곳은 7명, 한 곳은 4명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서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놀이공원 같은 지하의 지하를 멍하니 바라보며 줄을 서서 기다렸고 계단을 이용해 내려간 건 딱 1번 뿐이었다.
공간 자체는 정말 희한하고 놀라운 곳이지만 이 문화공간의 컨셉은 "땅 속의 놀이공원" 이며, 놀다보면 폐 정화도 된다는 치료개념의 주제도 있긴 했다. 실제로 독서를 하는 곳, 잠을 자는 곳, 상담을 하는 곳 등 소금광산의 깨끗한 공기가 여러 폐질환 환자들, 정신건강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꾸려진 조용한 공간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가족 단위로 오는 관광객들이다. 나는 저 사진의 천장에 가까운 통로를 한바퀴 쭉 도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세로로 죽죽 달려있는 조명이 깊이감을 느끼게 해 스릴이 있었다.
작은 한 층을 더 내려오면 저렇게 물 위에서 보트체험하는 곳도 있다. 깊이가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넓은 것도 아니고 라이프가드 따위 따로 없는 것을 보아 그리 깊은 것 같지는 않다. 물 속이 조금 보였다면 탔을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타진 않았다. 대신 대기석처럼 보이는 둥그런 넓은 벤치 공간에 한동안 앉아서 신선하다고 하는 그 공기를 깊게 들여마셨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뭐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그래도 바로 올라가는 것은 또 아까우니까. 벤치에 앉으니 광산자체의 와이파이가 잘 잡혔다. 그래서 친구들과 카톡을 좀 하고 나왔다.
정말 잘 꾸며놓은 곳임이 틀림없다. 왜 씨기가 투르다광산만 짧게 보고 떠나버리는 관광객은 카우치서핑으로 받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투르다는 소금광산만 있는 곳이 아닌데. 하긴 나도 그와 연결되지 못했다면 아마 이 광산만 보고 갔겠지. 그나마 그가 자동차로 이곳 저곳을 데려다주었으니까 토요일날 그렇게 가볼 수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나는 운이 굉장히 좋았던 편인 것이다. 내가 퍼블릭에 여행일정을 올렸고 그가 나를 캐치해주었으니.
나가는 길에 복도를 걷다가 여러가지 설계도 그림이 전시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중세시대서부터 1930년대까지 소금 채굴이 이루어지던 곳인데, 지금처럼 현대화되기 전 이 광산을 어떻게 접근을 했을까 시대별로 보면 되게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발전사 같은 것은 볼 수 없는 것 같다. 그냥 저런 몇 개의 설계도를 보며 오옹 그렇구나 하는거지.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의외로 이런 설계도와 설명판을 보지 않고 바로 나갔다. 가이드투어를 했다면 훨씬 흥미진진했을 거다.
다 보고 나오니 거의 딱 2시간이 흘러있었다. 혼자 보기엔 조금 심심하고, 화려한 관광지였지만 가끔 이런 곳에 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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