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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폴란드 - 옆 도시로의 여행, 우쯔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19. 12. 26.

  바르샤바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 같아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자 베로니카의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았을 때 우쯔라는 도시는, "에~~ 볼거 없어" 하는 평이었다. 어디로 갈까나 지도를 살펴봤을 때 바르샤바에서 멀지 않은 곳이 길래 한번 던져봤던 곳이다. 하지만 베로니카에게 물어보자 다른 대답이 나왔다. "우쯔는 정말 멋진 도시야. 나도 우쯔를 좋아해. 이번 주말에 카밀(그의 남자친구이며 동거한다)이 오면 아마 카밀네 부모님 댁에 갈 것 같은데, 같이 가지 않을래?" 

  이렇게 주말에 우쯔로의 여정이 확정되니 당연히 바르샤바에서의 체류도 길어졌다. 그 사이 무료 관람날을 챙겨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을 다녀왔고 수영도 한번 했다. 금요일 저녁에 카밀이 영국 출장에서 돌아왔고 우리는 자정까지 넷플릭스로 <Love death + Robots> 을 같이 보고 잠들었다.

편안하고 깔끔한 기차 내부. 역시나 티켓도 열차 내 기계로 구매할 수 있다.

  기차로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나, 한국의 ktx 만큼 빠르지 않고 천천히 부드럽게 달리는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인의 속도로는 1시간으로도 가능한 거리가 아닌가 싶다. 가는 동안 베로와 카밀이 열심히 방문해볼만 한 곳과 먹을 만한 곳을 찾아주었다. 사실 카밀의 본가가 우쯔에 있어서 이들이 자주 다니고 잘 알기도 하겠지만, 글쎄. 외국인에게 추천해줄 만한 곳도 이렇게 술술 잘 나오는 것을 보면, 특히 베로가 얼마나 이 나라와 도시들에 애정이 많은 사람인지 또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그들은 내가 점심을 해결할 유명한 팬케이크 식당까지 같이 걸어가 주었고 거기서 우린 내일 만나자 인사하고 헤어졌다.

저 굴뚝 건물은 상징적으로 꾸민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옛날부터 존재하는 공장이었다.

  아주 유명한 팬케이크 식당에 도착한 나는, 남들 먹을 1그릇 먹을 때 또 2 그릇을 시켜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했다. 사실 폴란드의 수프가 아주 다양하고 맛있는 편이라고 하던데, 과연 따끈한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그냥 팬케익만 집어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평생 팬케이크라고는 반죽 구운 것에 시럽이나 올리고당이나 찍어먹고, 카페에선 블루베리나 딸기를 얹은 '디저트'로만 먹었지, 한끼 식사가 되는 팬케이크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프를 먼저 다 들이키고나서 팬케이크가 나왔는데, 아뿔싸 싶으면서도... 행복했다.

Manekin 이라는 체인이다.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좋아 유명하다. 30분 정도 웨이팅이 있었다.

  내가 시킨 것은 말린 토마토와 시금치, 치즈가 들어간 '구운 팬케이크' 였고, 사실 미국식 팬케이크도 판매하나 여기까지 와서 그걸 먹고 싶진 않았다. 저 정사각형 반죽을 칼로 자르는 순간, 이미 나는 입맛에 딱 맞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전체적인 식감은 턱을 별로 쓰지 않아도 되는 부드러움이었고, 시금치와 반죽과 치즈가 담백함을, 토마토가 상큼함을 더해주는 맛이었다. 위가 하나 더 있었다면 하루종일 '맛있어^~^' 하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먹고 나니 시간이 벌써 저녁 5시가 되어 베로와 카밀이 추천해주었던 많은 곳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가봐야지 생각했던 2곳 중 종료시간이 늦은 우쯔시티박물관으로 허겁지겁 걸어갔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영화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었기에 관람에 제한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에 비해서는 볼 것이 다양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쯔 출신의 유명한 Artur Rubinstein의 유품들과 피아노, 이 도시를 주름잡았던 부유한 가문의 생활상 등이 지상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우쯔시에 대한 것은 지하 층 뿐이었는데, 폴란드가 이 도시를 제조업의 도시로 계획한 후로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여러 문화가 섞이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건물의 한 층에 폴란드인 가족, 독일인 가족, 유대인 가족이 아무 문제 없이 평화롭게 생활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전쟁 전까지의 일이었겠지만, 폴란드는 여러 문화에 대해 상당히 개방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물관을 나와 베로의 우쯔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베로는 "아무리 우리가 따로 다닌다고 해서 너를 게스트하우스에 묵게 할 순 없다"며 그의 친구를 연결시켜 준 것이다. 근처에서 친구 아가타는 1시간 후에 만났으며 나는 이날 아주 아늑한 다락방에서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그 역시 스카우트 멤버라며 이런 호스팅은 멤버들끼리 자주 부탁하는 일이라고, 하루 묵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오히려 폴란드인의 두번째 저녁식사(사실 폴란드인에게 저녁이라는 개념은 없다. 오히려 점심을 저녁이라 여기고, 이후의 식사를 두번에 걸쳐 먹는다고 한다)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아가타의 어머니께서 냉장고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꺼내신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양하게 차려주셨다. 저녁 8시~10시 경까지 우리는 트와일라잇을 틀어놓고 아가타와 그의 부모님과 수다를 떨었다. 

"우리집은 조금 외곽 시골에 있어" 라고 아가타가 경고하듯 말했지만, 배낭여행자에겐 그저 호화주택이었다.

 

  다음 날 아가타가 어제 만났던 장소까지 다시 태워다주었다. 아침식사 역시 풍족하게 얻어먹고 나왔으나 이상하게 밥 때가 되면 배가 너무 고팠다. 그래서 베로가 말해주었던 Soup Culture 라는 수프집에 갔다. 일반적인 음식점은 아니고, 예전 유명하고 큰 의류공장을 쇼핑몰로 새단장한 Manufaktura 단지 내의 작은 가게였다. 간단히 말하면 테이크아웃 수프인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사장이 먹을 수 있는 컵수프를 개발한 것이 재미있다. 가격도 맛도 생각도 너무나 괜찮은 곳이었다. 나는 단호박 수프를 가게 안에서 먹다가 너무 뜨거워서 일부러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먹어야 했다. 그래야 뜨끈한 것이 더 맛있으니까!

  배를 채운 다음에는 이 Manufaktura 라는 의류공장의 역사를 볼 수 있는 Museum Fabryki (공장박물관 쯤으로 번역하면 되겠다) 를 둘러보았다. 거대 공장이 세워지면서 인도에서 수출된 면이 실제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공장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박물관 안에는 실제로 실을 짰던 커다란 기계들이 놓여져있고, 직원이 단체관람객을 위해 시연을 하길래 나도 얼떨결에 볼 수 있었다. 굉음을 내며 챡챡챡챡 움직이는데, 저러다 잘못 건드리면 다치겠다, 이것이 산업재해의 시작인가 싶었다. 

  실제로 공장 단지 안에는 직원의 복지를 위한 시설이 충분했다고 한다. 물론 근로자들의 투쟁으로 얻어진 결과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가족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 도서관, 놀이시설, 병원 등이 있었고 여가문화 증진을 위해 다양한 동호회도 운영되었다고 한다. 생산직 근로자를 위한 알찬 복지가 1878년에 이 정도라니 내가 아는 '공순이 공돌이가 받는 처우' 와 자꾸 비교하게 된다. 사람 노동의 가치는 왜 이렇게 되가고 있는 걸까? 왜 우리는 우리 몸바쳐 일하는 노동을 자꾸 평가절하할까......?

  우쯔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유대인묘지였다. 버스에서 내려 구글이 알려주는 길로 한참을 걸었는데, 출입문이 바뀌는 바람에 10분 정도를 아무도 없는 한적한 길가를 더 걸어 도착했다. 묘지. 베로는 왜 묘지를 가보라고 추천해줬을까. 바르샤바의 유대인회관으로는 내게 부족해 보였던 뭔가가 있는 것일까.

직접 걸어봐야 알 수 있는 분위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주 낡은 건물에서 어떤 할머니께서 슥 나와서 "비지터?" 라고 하여 따라 들어갔다. 50년대에나 쓰일 것 같은 벽난로에 나무장작이 타고 있었다. 그에게 입장료를 지불하고 천천히 이 묘지를 걷기 시작했다. 묘지는 그저 숲 속을 걷는 것 마냥 걸으면 걸을 수록 어둠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 어두컴컴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해 분위기는 공포영화처럼 변해갔다. 무덤의 비석들은 너무 낡아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진처럼 기울어짐은 물론이요, 깨지고 부서지고 분해되고 있었다. 

최근에 돌아가신 분은 비교적 통로쪽에 자리했다.

  묘지를 걸으며 하나의 생각에 수렴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시기에 죽었다는 것. 수용소에 끌려가 찾을 수 없는 시체까지 생각한다면 대체 왜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 밖에 없었다. 처절하고 우울한 감정이 가슴에 꽉차서 이 묘지숲을 너무 깊게 들어가진 못했다. 갑자기 독일에 대한 악감정이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나를 또 울컥하게 했던 것은 최근 돌아가신 분 뿐 아니라 이끼가 잔뜩있는 묘지에도 작은 돌맹이나 밝은 색의 램프가 많이 놓여있었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뭔지 몰라 나중에 베로에게 물어보니, 죽은 사람에 대한 마음을 두고 오는 것이라 하여 속으로 오열했다. 사실 램프는 기독교적인 물건이고 돌맹이가 유대인들의 의식이라고 했다. 묘지를 방문하여 우리가 꽃이나 막걸리 등을 무덤에 두고 오듯, 유대인들도 무덤 속에서 외롭지 말라고 돌맹이를 위에 올려놓고 온다고 한다. 그 많은 묘지 위에 그 많은 돌맹이와 색색의 램프들이 밤새 어둠을 함께 지내준다고 생각하니 정말 그 의식이 너무 소중해 보이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평생 할아버지 묘지를 딱 한번 가본 사람이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묘지의 윗부분에 다양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각각의 그림마다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책이 그려져 있다면 학자나 교사처럼 지식을 나눈 사람, 물을 붓는 그림이면 돈이 많아 지역에 좋은 일을 한 사람, 꽃이 그려져 있다면 밝고 사랑스러운 성격으로 주위를 밝힌 사람, 손을 잡는 그림이라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 등등...... 베로에게 말로 들은 것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그러한 묘지의 구성이랄까 숨겨진 의미랄까. 그런 것들이 참 이 우쯔로의 발걸음이 뜻깊게 만들고 이 시간들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나 다크투어리즘 좋아해. 묘지에 가면 많이 우울해질 수 있다고 베로가 얘기해주었을 때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던 게 생각난다. 정말 가라앉아버린 마음으로 기차역을 향했지만, 정말 나는 그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베로가 예약해준 캘리그라피 수업 때문에 먼저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참, 우쯔라는 도시는 '공장만 있는 도시' 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하여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베로가 얘기해 주었다. 폐공장을 활요한 거대 쇼핑몰 Manufaktura 만이 매력이 다가 아니다.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많이 있으며, 시 자체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편안하고 살만한 곳으로 변신중이라고 한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벤치 수를 확대하고 공원을 만들며, 특색 있는 음식점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다. 멋진 카페와 음식점이 많았는데 시간상 좀 더 가보지 못해서 아쉬웠다. 

옛건물이 많지만 도로쪽 면을 활용한 벽화가 참 많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