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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폴란드 - 발트해를 보러 가자, 그다인스크로!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19. 12. 26.

  우쯔를 다녀왔기 때문에 발트해를 보기 위해 그다인스크(Gdansk)를 다음 여정으로 정했다. 베로도, 베로의 친구들도, 우쯔에서 하루 재워줬던 아가타도 입을 모아 그다인스크를 추천해주었다. 

  "베로, 나 입양되는 기분이야, 하하."

  베로는 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다인스크에 있는 친구를 연결시켜 주겠다고 한다. 누가 한국인만큼 정이 많은 나라는 없다고 했는가. 베로가 한국에서 오래 지내봤기 때문에 한국화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지모드인 초보 배낭여행자를 위해 편의를 미리 생각해서 잘 곳을 소개시켜준다는 말을 나는 아가타에게서도, 베로의 친구들에게서도 들었다. 내 사주팔자가 복이 지지리도 없는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이렇게 복이 찾아오긴 하는구나 생각한다. 나는 이전에 스카우트 총회 때문에 일정짜기 도와주러 갔을 때 만난  아기(Agi%*%^....폴란드식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아가어쩌구 였는데 애칭만 기억남)에게서 이미 그다인스크 친구를 연결받기로 말을 해놔서 베로에게 따로 청할 필요는 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얼굴 한 번 안 보고 숙소를 제공한다니. 이 놀랍도록 신기한 고신뢰관계, skout 멤버들의 정신이 여행자로서 고맙고 본 받고 싶어진다. "우린 사실 세계 어디에나 있어!"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디서나 눈에 확 트이는 형광연두색 플릭스버스. 볼 때마다 거대한 애벌레 같다.

  베로가 저렴이 교통편 중에서 블라블라카(blabla car)라고 카셰어링을 추천해주었지만, 공인된 운전기사가 아닌 점에서 안전문제가 두려워 편하게 플릭스(Flixbus)를 타고 갔다. 아무래도 지방행 버스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고 두 자리를 차지하고 갈 수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그다인스크까지 소요시간은 살짝 지연되어 5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그다인스크에서 나를 케어해줄 사람은 2명이었는데, 시티가이드를 해주는 마테우츠(Mateusz)와 재워줄 큐바(Kuba)였다. 마테우츠가 도착 몇시간 전부터 먹을 만한 곳을 쭉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탑승 전 아무런 군것질 거리를 사지 않았던 데다가 도착 지연으로 상당히 배가 고팠던 나는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성대한 식사를 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마테우츠가 알려준 곳 중 한 군데를 들어가서 먹었는데 그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펩시콜라, 오이피클, 닭고기, 감자 -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의 합! 한화로 6300원 정도.

  채식을 지향하고 있기에 큼직한 고기류를 빼면 어쩌면 내가 먹는 음식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뷔페식에서 골라담았을 때 각각이 맛있으려면 꽤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마치 밥집가서 불고기덮밥이나 제육볶음을 시키면 대부분 비슷한 맛을 기대할 수 있지만 오므라이스나 야채볶음밥을 시키면 그 집의 재량에 운을 맞겨야 하는 것과 비슷). 다행히 이때 먹은 세가지 요리는 모두 훌륭했다. 참 오랜만에 씹는 닭고기 덩어리였고 거슬리지 않는 향의 상큼한 오이피클이었으며, 감자는 정말이지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수분기 없이 포슬한 찐감자가 적당히 간이 되어서 '폴란드 감자는 왜 이렇게 맛있지' 감탄하며 씹었다.

  가이드를 해줄 마테우츠와는 그의 퇴근시간에 맞춰 4시 반쯤 만나기로 했으나 오는 길에 차 사고 때문에 도로가 많이 막혀 6시쯤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 크리스마스마켓이 한창인 올드타운을 혼자 걸으며 예습을 했다. 

곧 바다로 이어지는 강. 바르샤바의 비스와 강과 이어지는데, 사실 폴란드 전역을 훑는 엄청나게 긴 무역로였다고 한다.

  마테우츠는(이하 마키. 그의 애칭임)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닌 듯 했으나 책임감이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IT 계열 개발자인데 퇴근 후 스카우트 관련 업무로 담당자 자리를 맡고 있는게 많아 상당히 바쁜 일상을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게 자기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을 소개 받을 때면 흔쾌히 도시 소개를 자처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잘 큐바집에 짐을 풀고 우리는 다시 올드타운으로 왔다. 해는 완전히 져서 밤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내가 아까 예습한 거리와 속속들이 위치한 보물같은 그다인스크의 스토리를 완벽하게 소개해주었다.

강가 골목길에 숨어있는 제일 비싼 주택가. 저 계단 식의  입구는 낮이 되면 호박쥬얼리나 핸드메이드 제품을 늘어놓고 파는 럭셔리 마켓이 된다. 

  올드타운의 제일 맘에 들었던 부분은 저 숨겨져 있는 골목가이다. 제일 비싸고 제일 예쁜 골목으로 혼자서 왔다면 절대 알아보지 못했을 곳. 많지 않는 방문객들이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다. 여름이면 아마 옥상에서부터 이어지는 듯한 배수관이(사진상 가운데 튀어나와 보이는 긴 가로줄) 골목쪽으로 나와있는데, 괴물이나 동물 형상의 입에서 물이 나왔을 것을 생각하니 재밌다. 이름은 더 재밌다. puke pipe 라고 한다는데 별도의 땅 쪽으로 관을 또 연결해놓지 않은 집은 저 골목길로 바로 물이 콸콸콸 흘러나온다고 한다. 또한 저 계단식 입구 말인데, 전쟁 중 파괴(바르샤바 만큼은 아니었지만)된 주택가를 보수를 할 때, 시민들은 집 지을 재료가 없어 파괴된 건물에서 돌과 콘크리트를 모아서 입구를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골목에 들어서면 한쪽은 저런 입구가 있고 한쪽은 아예 없는 경우가 있었다. 한쪽은 시민들이 보수를 한 건물, 한쪽은 아예 파괴되어 새로 올린 건물이란 뜻이다.

  그다인스크는 예전부터 거대한 조선소를 지닌 도시였다. 그래서 조선소 노동자가 많았고 이들이 그다인스크의 시민권, 독립을 주도했던 것 같다. 그와 올드타운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나서 수력발전기가 있는 공원과 독립박물관도 소개받았다. 듣자하니 굉장히 스토리가 있을 것 같아서 다음날 그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름은 European Solidarity Centre 인데, 그다인스크 시민들의 공산주의에 대항한 많은 운동들을 상당히 세세하고 훌륭하게 전시하는 곳이었다. 박물관의 구성이 매우 전문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시간만 많았다면 한나절은 여기서 보내도 되겠다 싶었다. 왜 이름이 유러피언이라고 붙였을까 생각해보니, 그다인스크 사람들의 움직임이 공산주의 해체에 임박했던 시기에 주변 국가들에게 많은 본보기가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1층에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의 물결을 맞이하는 유럽 각국의 사진들이 따로 전시가 되어있었다.

이날 하필 또 박물관에서 저자와의 북토크? 같은 행사가 있어서 일찍 관람을 마감해야해서 아쉬웠다.

  이 박물관을 가기 전에는 바다를 보러 갔었다. 발트해! 나의 첫 발트해!

  큐바의 집에서 걸어서 15분이랬지만 막상 걸어보니 30분이었다(구글맵에 또 배신당함). 하지만 뭐 어떠랴? 나는 시간이 많은 여행자이고 이렇게 황당하게 걸어야하는 시간 또한 이 곳을 알아가는 방법일테니 아깝지 않다. 운 좋게도 날은 요 며칠보다 훨씬 밝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폴란드에서의 십 몇일째를 살아서 그런지 생활상으로 불편하거나 위험한 요소는 거의 없었다. 완벽 적응 수준이라고 자만하며 발트해도 내 구역이다라는 웃기는 오만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이것이 앞으로 벌어질 일의 서막이란 걸 알았다면 좀더 겸손하게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백조가 바다에 살다니 뭔가 신기하고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사진만 보면 여기가 경포 해수욕장 쪽인지 발트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저 너머에 스웨덴이 있고 덴마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새삼 내가 꽤 북쪽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호수에만 사는 줄 알았던 백조가 갈매기의 기를 죽이며 사람이 주는 간식을 뺏어먹었다. 5살 짜리 아이만큼 큰 키로 모래 위를 뒤뚱뒤뚱 걷는걸 보면서 공룡이 저렇게 바다에서 놀았을까 상상하게 했다. 누군가 함께 왔었다면 "와 바다다 바다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겠지만, 분위기는 생각보다 고요했고 가족단위 방문객만 보여 소소했다. 다만 바람이 엄청 불어 살짝 고독함이 밀려왔고 이 감정을 틈타 출국 전 룸메에게 툭 던졌던 소망을 성취할 수 있었다.

(출국 불과 몇일 전) "돌고래, 지금 어떤 기분이야? 너 진짜 몇일 후면 여기 없는 거야. 막 떨리고 그래?"

"떨리는 것도 있는데 사실 좀 답답해. 날짜가 다가오니까 빨리 시작하고만 싶어. 걱정이랑 부담이 많이 돼. 발트해를 바라보면서 노래나 지르고 싶어. 알지, 내가 요새 꽂혀있는 그 노래?"

  출국 직전 나는 권진아의 운이좋았지 라는 노래에 푹 빠져있었고, 코인노래방을 갈 여유가 없었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들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풀곤 했었다. 가사는 '우리가 복잡하지 않게 이별해서 다행이야" 라는 사랑에 관한 노래지만, 내용과 무관하게 권진아님의 창법과 멜로디 구성이 맘에 들었다. 발트해 어딘가에 걸터 앉아 남들 보던 말던 쌩라이브를 멋지게 부르고 와야지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걸터 앉을 곳도 없었고 세찬 바닷바람에 내 목소리는 묻혔고 가래 때문에 노래가 잘 불러지지 않았다. 게다가 공사중인듯 등 뒤로는 포크레인이 우다다다다 지나간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파트만 돌림노래처럼 흥얼흥얼 불렀다. 에잇 뭔가 아쉬워서 뭐라도 할 짓 없나 싶다가 작은 조개껍데기를 주었다.

이 중 하나는 바닷물에 씻고 나서 바람에 날라가버려 다시 주운 것이다.

  내가 언제 발트해를 다시 와보겠어. 노랜 멋들어지게 부르진 못했으나 조개껍데기를 고르며 막막하고 불안했던 과거, 몹쓸 기억들을 바다에 외쳐놨으니 새로운 기회를 가져가겠다고 다짐해본다. 모래가 많이 묻어서 깨끗하게 바닷물로 씻어서 휴지로 감싸왔다. 나를 위한 선물을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사실은 한국까지 가져갈만한 것은 이처럼 작고 가벼운 것이어야 한다). 이렇게, 차갑고 신선한 정신을 가득 채워 폴란드 여정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