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실 어제 최악의 밤을 보냈어. 혹시 나 냄새나진 않아?"
사실 나의 첫 호스트 베로니카를 만나 어제 그 호스텔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기를 고대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사건이었는데 막상 짧게 요약하여 말하고 나니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건 과거니까. 그것도 나만의 과거. 이제 베로를 만났고 그의 집에 적어도 3일 정도 안착할 건데 그딴게 지금 뭐가 중요해? 그의 집은 시내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또 트램을 타고 가야 하는 여정이었지만 우린 할 말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는 그를 알아가는게 더 중요하다!
종종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을 굉장히 적게 사귀는 편인데, 그래도 그렇게 가끔 연이 되는 사람들을 알아가게 되면 '이런 나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네?' 하면서 매번 놀랍고 소중하다. 베로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그를 만나고 나서 폴란드를 천천히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는 한국에서 3년이나 여행과 홈스테이, 템플스테이, 농장일 등 꽤 여러 경험을 하고 온 사람이다. 산과 여행을 좋아해서 최근에는 키르기즈스탄, 이란 등을 배낭/자전거여행을 했다고 한다. 나에겐 이런 대담한 사람들이 무척 필요했다. 생각이 많은 골똘맨은 이런 사람들 옆에만 있어도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 내 인생이 달라졌다하는 느낌이 든다(그를 서울사이버대학이라고 칭하고 싶다).
전통 댄스 워크샵
그의 집에 묵는 동안 베로는 나에게 여러 제안을 많이 했는데, 첫 제안은 만난 첫날에 자기가 등록해놓은 댄스 워크숍에 같이 가지 않겠냐는 거였다. 그것도 폴란드 전통춤이라고. 오? 와이낫? 내가 언제 폴란드 전통춤을 배워보겠는가. 사실 이날 전날의 경험과 아침 일찍 투어도 다녀와서 두통과 체기가 온 몸을 짓누르고 있었는데, 거절하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제안이어서 안 갈 수가 없었다. 베로의 집에 내 짐들을 내려놓고서 다시 우리가 만났던 Praga 지역으로 갔다.
워크숍이 열리는 건물은 한마디로 공사 중인 곳이었다. 베로조차도 초행이어서 많이 해맸는데 마침 우리처럼 참가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어 부탁하여 같이 올라갔다. 말 그대로 공사 중이었기에 올라가는 계단과 복도 모두 시멘트와 콘크리트 가루가 풀풀 날렸다. 조명도 너무 부족해서 베로가 날 이렇게 팔아버리는 건지 살짝 의심이 가긴 했다. 하지만 곧 밝은 불빛이 보였고 수업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구경만 하기로 했었으나 어느새 외투를 벗고 수강생 무리로 들어간 베로가 윙크를 하면서 얼른 같이 하자며 손짓을 했다.
아주 기본적인 스텝부터 시작하는 날이어서 얼마나 행운인지. 박자는 쿵쿵쿵/짝짝 이거나 쿵짝짝/쿵짝짝의 반복이었다. 수강생들의 반을 갈라 짝을 돌아가면서 바꿨고 배경음악은 아코디언 연주가가 전통 멜로디를 쉼 없이 라이브로 연주해주었다. 나만 외국인이었어서 매우 어색했지만 박자에 적응하고 나서 둘러보니 다들 아는 사이가 아니라서 그런지 모두 어색한 표정들이어서 안심이 되었다. 수업의 중간부터는 박자가 엄청 빨라져서 1초에 세 스탭씩 밟아야 했고 초보들이라 그런지 서로의 발을 간간히 밟아가며, 옆 커플의 동선과 부딪히면서, 묵중한 마룻바닥을 정신 없이 이동했다.
수업은 2시간을 꽉 채웠고 다 끝나고 나니 아까까지 날 아프게 했던 두통과 체기가 싹 날아가 있었다. 겨드랑이와 등에서 땀이 느껴졌지만 전통춤을 하나 배웠다는 뿌듯함과, 베로와 함께 멋진 시간을 보냈다는 기쁨만이 남았다. 전날의 악몽 같던 기억은 이미 한달 전의 일처럼 멀리 느껴졌다.
그 동네 사람처럼 다니기
베로의 집은 폴란드의 대부분의 건물들이 그러하듯 30년 이상된 건물이었기에 그냥 보면 오래된 정신병동처럼 삭막하고 과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키패드가 아닌 열쇠 사용은 물론, 내가 내릴 층에서 문을 열지 않으면 다시 1층으로 복귀해버리는 이상한 엘레베이터까지. 게다가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변기 물내리기는 줄을 당겨 내렸다. 하지만 이런건 그냥 부가적인 것이다. 가끔은 어쨌든 굴러가기만 한다면, 내 삶이 살아지기만 한다면 그런건 몸의 적응력에 맡겨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폴란드 역시 집 값이 많이 뛰었고 청년들이 경제적인 독립을 하기엔 거주비용이 매우 부담이 되는 것. 베로는 지인 덕분에 아주 싼 값으로 6개월만 들어와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시내와는 조금 한적하지만 그래도 있을 것 다 있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동네의 면면들을 좋아했다. 나 역시 로컬을 관찰하기 좋아했기에 구역마다 작은 시장이 있는 것, 그 안에 맛집은 무엇이며 문화공간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즉시 구글맵에 북마크를 해두었다가 다 방문해 보았다.
어떤 공간은 베로의 말과는 다르게 문이 닫혀있어 구경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 동네의 한 일상이겠고 대신 돌아오는 길을 달리해서 다른 모습을 관찰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관광객이라기보다는 여행자라는 신분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유명한 어디어디를 꼭 가야해라고 정해 놓는 순간 스트레스가 생기는게 사실이다. 거기서 보낸 시간이 행복했는가, 잔잔한 생각이 가능했는가, 뭔가를 관찰할 수 있었나. 특히 1박2일이 아닌 나와 같은 장기여행인 경우 매일을 열혈 관광객모드로 사는 것은 정말 해서는 안될 짓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는 베로의 집에서 나와 열쇠로 문을 잠그는데, 앞집 청년이 나오면서 '진 도브리(안녕하세요~)'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진 도보리 대답했고 뭔가 뿌듯했다. 나를 외국인이라서 인사한게 아니라 그냥 이웃이라 여기고 인사한 것 같아서. 또 하루는 시내로 진입하는 트램을 탔는데 한참을 구글맵을 보고 있지 않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아무리 부인해도 나는 관광객이기에 모든 길이 초행길일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제 베로의 집에서 시내까지는 몸이 느끼는 시간이나 창문의 풍경, 또는 제일 유명한 'Centrum(센뜨룸)' 역을 지났는지의 여부로 대강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순간들은 묘한 자신감을 주고 '내가 아는 공간이 생겼다' 하는 건강한 자만감까지 준다(친구들끼리는 '거기 내 나와바리지' 라고 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제와 좀 즐긴다는 느낌이 들어 여행자로서 행복했다.
베로가 추천해 준 맛집들도 참 좋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이라는 카페는 역시나 커피 맛도 분위기도 무척 괜찮았다. 또 스트레스가 만땅일 때 가끔 친구들이랑 간다는 좀 유명한 도넛가게가 시내에 있었는데, 그의 카우치에 신세 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답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거기서 종류별로 여러 개 사와서 같이 나눠 먹었다. 또한 그가 중고등학생 시절에 거의 매일 가서 먹었다던 밀크바(milk bar - 서민 식당으로 다양한 메뉴를 제공. 가성비가 좋다)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는, 음 과연 그럴만한 곳이네 감탄하면서 남들 1그릇씩 먹을 때 나는 2그릇을 먹기도 했다. 사진의 닭고기수프(좌)와 치킨튀김(우)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또, 라트비아 이후로 할 수 없었던 수영을 또 하고 싶어서 수영장 얘기를 했더니, 그의 남자친구와 실제로 가끔 간다는 인근 초등학교의 수영장도 갈 수 있었다. 그 수영장의 외국인 방문객은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장담해본다.
역사가 곧 문화가 되고
나보다 먼저 폴란드를 경험한 친구의 말로는 바르샤바가 서울 같다고 했다.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바르샤바에는 모든게 다 있는게 맞다. 거기에 관광객이 볼 수 있는게 참 많다. 특히나 전쟁과 식민지의 역사를 소중히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쟁 전부터 유대인과 러시아인, 독일인 등 인근 문화권이 섞여 있었고 그렇기에 다양성을 지키는게 당연한. 베로는 유대인회관과 프라가박물관을 강력하게 추천해주었다. 규모가 있는 곳도 아니고 관광객들에게 제일의 명소도 아니었지만, 나는 큰 국립박물관을 관람해서 받아들이는 정보량보다 더 유의미한 사실들을 습득하는 것이 더 뿌듯했다.
한편으론 그런 작고 미세한 역사들을 잘 보존하고 설명하는 박물관의 전시방식 같은 것에도 감탄하곤 했다. 유대인회관에는 세계 2차대전과 소비에트 통치 기간 중 대규모로 학살을 당했던 사람들의 수 많은 기록들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어쩌면 그곳은 유대인 기록물의 무덤이나 다름 없으며, 유대인의 역사가 아닌 핍박의 역사만이 놓여있다.
프라가박물관은 힙함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프라가의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다. 내가 갔던 날이 무료관람날이라 방문객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나 뿐이었어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아니 근데 이게 이렇게까지 마이너한 관심사인가 싶을 정도로. 아무튼 박물관은 사진을 중심으로 역사를 잘 배치해놓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전쟁 전까지는 그냥 보통 도시의 발전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여느 도시 발전 모습과 크게 다름 없이 건물을 올려 발전시키고, 강가 주변에서 수영을 하며 문화를 향유했다. 바르샤바 시내와 크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은 역시 전쟁을 기점으로다. 러시아로부터 조금 더 가까웠던 이유로 예전부터 러시아인들이 많이 살았는데 의도적 이주까지 있었어서 많이 섞였다. 또 어떤 폴란드왕은 유대인들에게 프라가에 터전을 마련해주어 정착을 허락했는데, 독일이 시내쪽 수용소로 강제 이주시켜서 도시민과의 거주지가 뒤바뀐 스토리도 있다.
이 박물관을 다 보고 나서는 베로니카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스케이팅을 탔다. 인생 통틀어 3번째 시도였는데 이날 꽤 많이 발전한 것 같다. 나 빼고는 모두 잘 타서 '이렇게 이렇게 타봐' 하면서 알려주었다. 결국 두어 번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곧 잡아주지 않아도 미약한 회전을 한다거나 속도를 올리는게 가능해졌다. 베로가 "Everytime i see you, you look like a thunder" 라고 해줘서 어린 애처럼 해맑게 웃으면서 탔던 것 같다. 참, 스케이트화 이용료만 내면 되고 빙상이용료는 무료였어서 부러워했더니, 시에서 주민들을 위해 서비스차원으로 겨울마다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하루는 예술가들이 상주하며 무료 워크샵을 매일 운영한다는 곳도 추천받아 갔다. 베로니카가 페이스북으로 정보를 찾아내어 몇 개를 골라주었고, 그 중에 나는 폴란드어가 통하지 않아도 될 만한 캘리그라피수업에 갔다. 일요일 저녁이었는데도 가족끼리 또는 혼자 조용히 그곳까지 찾아와 다들 모였다는게 참 신기했다. 바깥은 월요일을 준비하느라 휴일을 마감하는 분위기인데 이 사람들은, 그리고 저 선생님은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는 묵묵한 얼굴로 그 시간을 차분히 꾸미는 것이다. 폴란드어로 진행되었기에 그들이 중간중간 어떤 농담을 나눴는지, 어떤 비유를 하여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대충 옆자리 아이가 하는 진도를 따라하고 괜히 고개를 끄덕여가며 들었다.
그만 쓰고 싶은데 한 게 너무 많아서 주르륵 계속 써버리고 말았다. 거의 하루에 하나의 일과만 했던 것 같은데 결론 적으로 그게 단순한 하나가 아니라는게 새삼스럽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란드 - 발트해를 보러 가자, 그다인스크로! (0) | 2019.12.26 |
---|---|
폴란드 - 옆 도시로의 여행, 우쯔 (0) | 2019.12.26 |
폴란드 - 최악의 밤 (0) | 2019.12.22 |
폴란드 -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것 처럼 (0) | 2019.12.22 |
폴란드 - 적응, 견디기, 버티기 (1) | 2019.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