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게 있다. 가성비가 좋은 호스텔을 만나면 이왕이면 2일 3일 더 묵고 싶은 것. 하지만 좋은 곳은 금방 팔리고 더욱이 주말은 빨리 팔린다는 것. 폴란드에 와서 매일을 다른 숙소에 묵었는데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평점이 좋아도 내 방만은 구성원이 하필이면 안 좋을 수 있으니까(시끄럽거나 세탁상태가 별로인 시트를 쓰게 되는 등), 일단 도착해서 다음 숙박을 추가할지를 결정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묵고 있던 숙소가 참 맘에 들었는데 바르샤바가 이렇게 큰 관광지인지 매일매일 추가숙박에 실패하며 깨달았다. 이마를 치며 진작 추가할 걸 후회를 하며 아침 10~11시에 짐 정리하여 체크아웃, 이동해서 다음 호스텔에 큰 가방 맡기고 하루 시작하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전날 안 좋았던 컨디션 때문인지 카우치서핑 호스트 베로니카의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 말고는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주말이라 사람이 붐비는 것을 생각하니 아침에 눈 뜨자마자 힘이 좀 빠졌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건데 기 빠진 모습은 보여줄 순 없으니까 정신을 차려야했다. 아침으로는 근처 커피샵에 가서 사온 아메리카노와 그 전날 수퍼마켓에서 샀던 뵤카라는 기본빵, 도넛 한개를 먹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기운을 차릴리가? 점심으로는 내 소울푸드 쌀국수를 사먹고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은 올드타운에 속해 있었다. 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인데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라서 올드타운의 도로는 아예 자동차 진입금지가 되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또 오래 걸어야 했는데 블록마다 푸드트럭, 작은 공연을 준비하는게 눈에 보이니 그래도 재미가 있었다. 와... 되게 준비를 열심히 하는 느낌.
2시쯤. 한강처럼 이 수도를 가르는 비스와 강 주변. 한국을 방문한다는 친구들이 모여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5명의 사람과 2명의 개가 차분히 기다리다가 내가 벨을 누르니까 왈왈!헬로!컹컹!짐도브리(폴란드어로 안녕하세요)!하이! 하면서 반겨주었다. 내 소개를 하면서 그들 소개도 처음 들었는데 이들은 개인관광 목적이 아니라 4년 후 수백명의 청소년들을 이끌고 단체방문 예정인 Scout 폴란드 청년리더들이었다. 기껏 젊은 사람들 가기 좋은 서울 핫스팟을 알려줘야지 했던 머릿 속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 것 같았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관광지는 물론이고 서울에서 수백명을 한 곳에 재울 만한 곳, 또는 열명 정도씩 나누어서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나에게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이 있지만 현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게 느껴졌다. 3박 4일간 방문할 곳들은 거의 추천해주었으나, 실무를 해봐야 알만한 부분은 maybe 를 덧붙여가며 몇 개의 선택지를 나열하는 방법 뿐이었다. 하지만. 4년이란 시간이 있으니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들이 궁금하거나 세컨체크가 필요할 때나, 그리고 나도 도움될 만한 것이 있으면 연락하기로 종결되었다. 또, 나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냐며 갈만한 이웃 도시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모임을 마치고 나오니 아까보다 훨씬 많은 인파와 크리스마스 불빛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정보를 나누고 왔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그 인파속에 혼자 걸어가자니 살짝 외로워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축제의 모양과 내용이 꽤 알차고 귀여웠기 때문이다. 곳곳에 산타들이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한테 선물을 나눠주고, 신나게 커플과 가족들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타고, 크리스마스와인, 어린이 합창단 공연, 1인 예술가의 퍼포먼스들이 사람들을 계속 즐겁게 해주었다. 와. 아직 크리스마스 되려면 2주나 남았는데. 마치 내일이 바로 크리스마스인냥 벌써부터 이러기냐며 속으로 툴툴대기 시작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폴란드인들 또한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챙긴다고 한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마켓을 떠올릴 때 독일, 체코, 영국 등을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그쪽으로 몰린다. 하지만 폴란드 사람들 역시 자국 크리스마스 축제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온 가족이 모여 밤 늦게까지 음식을 함께 먹고, 이브날에 집에 방문한 누구라도(거지라 할지라도) 한그릇의 음식을 차려주는 문화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베로니카는 내가 폴란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pity 하다고 몇 번이나 유감을 표했다. 사실 오늘 만난 친구들도 '왜~ 폴란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지 않구~?' 하면서 영업을 자꾸 했다. 그래서 실제로 나는 독일로 곧 가야지 했던 막연한 계획을 바꿔볼까 자꾸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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