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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폴란드 - 혼자 헤매기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19. 12. 13.

  일기를 밀려 쓰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라트비아에서는 뜻밖의 친구를 만나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이동에 자신감이 확실히 붙었으나 그동안 밀린 것을 부랴부랴 썼다. 이번에는 무엇이냐. 이 도시가 꽤나 재미있어서. 오늘 이 포스트를 쓰는 날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10일째이다. 생각보다 이 도시에 굉장히 오래 머물고 있는데,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서는 예상보다 짧게 머물렀으니 대충의 원래 계획(크리스마스에는 독일을 간다라는)에는 큰 차질이 없다. 나는 리투아니아에서 폴란드로 넘어갈 때 Couch surfing 을 통해 호스트와 연락 중이었다. 주말엔 외국에 나가있는대서 그 다음주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카우치서핑은 자기 집의 빈공간을 여행객에게 내어줄 호스트와 경비절약이 필요한 여행객을 이어주는 앱이다.  그를 만나기까지 5일 동안은 매일 이 숙소 저 숙소를 옮기면서 폴란드를 혼자 헤맸다.

  조금 다른 교통 시스템 

  폴란드 땅에 처음 내려서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교통권을 구입하는 방식이었다. 유럽이니까 당연히 1유로 정도 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숙소로 가는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날 맞이한 건 교통권기계였다. 카드로 75분짜리 교통권을 살 수 있다. 기사는 계산 따위를 하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정류소 주변에 Bilety 라는 기계가 있고 거기선 20분 짜리 등등 다양하게 구매할 수 있다. 그 기계에서 사면 버스에 탑승하여 펀칭기계에 넣었다 빼면 되고, 버스에서 구매하면 구매 순간부터 75분까지 유효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폴란드에서 1유로를 준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긴 무조건 즈워티이다. 유럽연합국이긴 하지만 아직 즈워티만 통용된다.

  숙소로 가는 길, 그 다음 날까지 비가 왔다. 정말이지 폴란드에서의 비는 '눈 겸 비' 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매우 자잘한 수분 미스트를 누군가가 날 따라다니면서 계속 뿌려대는 것 같았다. 화려한 분수대에 가까이가면 공기 중으로 날리는 물방울 맞을 수 있는 것처럼.. 마치 그러했다. 우산도 비옷도 소용없는 것 같은. 그래서 이 때까지만해도 이 도시가 축축하고 우울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여행자의 의무같은 것 아닐까. 어쨌든 이 새로운 도시를 탐색하러 발을 떼야했다. 애정을 붙이기 위해 구글 지도에서 평점도 좋고 거리도 오늘 내가 방문할 곳과 가까운 카페를 찾아갔다. 커피를 주문하고 나서 보니 정말 힙스터공간이었다. 남성미용실인데 옆가게에서 조그맣게 운영하는 카페였다. 외모를 가꾸는 데에 돈을 쓰는 남자들이 프로페셔널한 헤어디자이너에게 두상을 맡기는 곳? 다행히도 카페엔 미용실 손님 말고도 일반 손님도 있었다. 바리스타는 누가 봐도 힙합맨이었지만 나의 카페라떼에 무려 쓰리로제타를 그려주었다. 문 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사진을 찍어대서 그런가. sns 홍보를 의식해서일까 매우매우 잘해주는 느낌이었다.

  (외모와는 다르게) 이 작은 카페 공간을 자기 취향으로 한껏 꾸민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커피와 함께 이 도시에 애정이 붙기 시작하는 듯하다. 사실 여기저기에 costa coffe나 green cafe nero  같은 체인은 쉽게 볼 수 있다. 같은 비용이고 조금 찾기 어렵고 비를 조금 더 맞아도, 이 도시와 지역을 느끼기에는 최대한 체인을 피하는 것이 보람차다. 획일화된 것이 싫은 나는 일부러 보람을 만들러 가진 않지만 나를 더 적합한 장소에 노출시키고 싶다. 물론 하루를 훌륭한 카페라떼로 시작해야하는 강박이 한 몫 하는 거겠지만.

  비를 맞으며 큰 공원 하나와 대법원을 지났다. 구글지도로는 10분 거리라고 했는데 실제로는 빨리 걷는데도 15분 거리다. 구글맵은 뻥쟁이다. 카카오맵보다 대기시간도 길고 거리도 멀다! 으. 대법원 앞에 민중 봉기가 있었던 것 같은 군인동상이 멋졌다. 비 뿌리는 날이라 그런지 더 분위기가 장엄했다. 좀만 더 걸으면 바르바칸이라는 성곽이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다른 관광객을 보았다. 나중에 워킹투어에서 들은 바로는 이 성곽은 실제로 방어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전쟁을 대비해 지은 것은 맞으나 시기가 큰 전쟁은 다 끝나고서야 지어졌다며 useless 한 것이라고 가이드가 장난처럼 얘기했다. 옆엔 바로 바르샤바 궁전이 있었다. 궁전? 그렇다면 실내? 사실 궁전을 볼 생각은 없었으나 딱히 다른 선택이 없었다. 비를 피하며 둘러볼 수 있다는 이유로 티켓을 끊었다. 응접실.... 사무실.... 역대 왕들의 얼굴들.... 그냥 웅장한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대충 둘러보고 밥을 먹으러 갔다. 비건 식당을 찾아갔다. 여기서 나는 엄청난 버거세트를 먹을 수 있었다. 이 힘든 빗속 발걸음과 허기진 정신을 꽉꽉 채워준 비건버거세트. 먹는데 정말 한참이 걸렸다. 비건음식으로 배가 터지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능했다. 이날 시각적으로 본 것은 별로 없으나 먹는 건 정말 잘 먹었던 것 같다. Krowarzywa 라고, 체인인 듯하다. 정말 다양한 재료와 옵션, 넓은 자리. 잘 되는 비건식당이라는 걸 확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콱 처박혀서 찾기 어려운 곳이 아니다. 마이너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뭔가 신선하고 건강한 것', '그냥 오늘 따라 이게 땡겨서' 들어올 수 있는 음식점인 점이 무척 부러웠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다.

  잘 먹고 숙소에 들어온 나는 다른 숙소로 옮기기 위해 내 짐을 찾았다. 어쨋든 먹고 걸어다녀본 결과, 그곳이 주요 관광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더 시내로 예약을 하고 영차영차 두번째 밤을 보낼 곳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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