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헝가리다. 여행을 계획할 때 어쩌면 이 나라가 잘 맞는다면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해서 일할 수 있겠으며, 일하지 못하더라도 조금 오래 머물만 한 나라로 생각했던 곳이다. 대부분의 나라를 아무런 기대 없이 사전 조사 없이 들어가는 반면, 헝가리는 한국에서부터 여러 의미로 염두해두고 있던 나라다 보니 조금의 부담감과 기대감이 혼재했다. 뭐가 되었든 이 나라가 나랑 잘 맞는가에 따라서 장기 체류의 여부와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의 첫인상은 폴란드의 바르샤바 같았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바르샤바보다 건물의 규모가 조금 작은 듯하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와 같이 오히려 러시아와 완전히 가까운 곳 보다는 훨씬 러시아스러운 느낌이 물씬 난달까. 또, 바르샤바를 먼저 경험했어서 그런지 엄청 붐빌 것이라는 사람들의 평에 비해 그렇게 붐비는 것 같지도 않았다. 계절이 겨울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체코 프라하에 비하면 숨통이 좀 트이는 듯했다. 나는 저녁시간에 숙소에 도착하여 그날 뭔가를 하진 않았다. 혼재했던 부담감(다른 나라를 들어갈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이 무색하게 이전 나라들과 흡사한 교통 체계, 건물 양식, 간판들... 모든게 수월하다. 일단 예약해둔 숙소 침대가 꽤 맘에 들어 꿀잠을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신생 숙소기에 키친은 아직도 공사중이었으며 모든게 새것이지만 그만큼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바닥과 공기 중의 콘크리트 먼지가 찜찜하게했다. 특히 아침에 내 커피를 마셔야 하는 나로써는 기본적인 전기포트와 머그컵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 한끼 정도 간단히 요리할 때 필요한 후라이팬과 접시의 부재가 좀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숙소 위치가 굉장히 좋아서 5분만 나가 걸으면 다뉴브강이 보이고 지하철과 트램, 버스를 탈 수가 있다. 또 대중교통을 타러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가락시장(농수산시장)과 같은 큰 건물형 시장이 있어 좋은 식재료를 싸게 살 수 있다. 나의 첫 헝가리 관광지가 이곳이었을 만큼 가깝고 유명한 곳이다. 2층에 올라가면 기념품 가판대들과 푸드코트가 있었는데, 여기서 점심으로 굴라쉬와 감자요리를 먹었다. 딱 생각만큼 큰 규모이고 현지인도 많이 찾는 곳이지만 역시 관광지는 관광지였다. 시장러버는 생각보다 이곳에서 시간을 그리 많이 보내진 않았다.
셋째날에는 워킹투어에 갈 예정이었어서 머릴 좀 굴려 투어에서 다루지 않을 관광지를 둘째날에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회쇠크광장쪽의 세체니온천을 구경하기로 했다. 교통권을 사면서 알게된 것인데 1일권이 1650포린트로 한화로 6500원 정도 한다. 환승이 안되는 1회권이 350포린트인 것을 감안하면 내일까지 여기저기를 돌며 5번 이상 대중교통을 탄다면(환승포함) 훨씬 저렴한 선택이었다. 한번에 단위가 큰 교통권을 사는건 처음이어서 어색했지만, 여타 어떤 곳 보다도 검표원이 자주 보였으므로 확실히 사두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임은 확실했다. 교통권 판매기계는 지하철역 중심으로 있었으므로 혹시나 구매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세체니에서 온천을 할 것은 아니지만 구경을 하러 간 상황에서 입구인 회쇠크광장의 해 지는 광경이 굉장히 멋졌다. 건국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기념물 중 하나라고 하고, 전사나 신의 동상들이 많은 그 자체로도 멋진 장소이지만 하늘이 또 마침 이렇게 연출을 해주니 간 보람이 그득그득해졌다(소매치기 조심 : 지갑! 여권! 폰! 슬링백 앞으로!). 고대했던 세체니 온천은 입장권을 끊고 입장하지 않는 이상 온천장을 둘러싼 건물 유리창문에서나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마치 쭉 빙 둘러 산책로에서 구경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입구가 건물을 통해서만 있음을 직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유리창문이 더럽고 습기가 차있어 잘 보이지도 않으며, 온천안에 사람이 꽤 많아서 온천 자체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쭉 떨어졌다. 사실 사람이 별로 없으면 다른 날에 와서 몸을 담궈볼까 싶었지만 이건 뭐 개나 소나 다 들어앉은 마당에 무슨 온천수의 효과를 보고 릴렉스를 한단 말인가 싶은, 아 수영장이나 가고 싶었다.
이날 무슨 에너지로 돌아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돌이켜보니 야경을 보러 꽤 높은 요새에도 올랐더라. Citadella 라는 뷰포인트였는데 오르는 길이 꽤 길어 떨어져버린 체력을 확 느낄 수 있었다. 출국 전까지 다이빙과 배구로 규칙적으로 몸을 굴려 약간의 근육을 붙이고 나왔건만 이제는 약 20kg의 짐을 메고 걷는 것 뿐, 근육이 붙을 일이 없다.
사진을 업로드하면서 찾아본 것인데 이 동상물은 근본적으로 헝가리인의 자유를 뜻하는 게 전혀 아니다(관련 내용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04/212756/). 세운 시기는 헝가리가 합스부르크제국에 지배를 받던 시절이고 Citadella 요새 자체가 헝가리인들을 감시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소련군이 헝가리에 내려와 독일 나치군을 격파한 기념으로 세운 동상물이 이것들이라고 한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후 헝가리인들은 이런 역사의 잔여물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할까? 이를테면 경복궁을 훼손하고 가로막으며 서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폭파하여 없애는 게 당연한 결정이었을 텐데(물론 비교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레벨이긴 하지만), 만약 아직도 남아있다고 하면 되게 신경쓰이지 않았을까? 이런 동상은 규모가 큰 편이 아니어서 망정인데 꽤 많은 나라들이 그냥 그대로 두고 있다. 아픈 과거까지 역사의 현장으로 그대로 남기는 걸까.
아무튼 이 뷰포인트는 올라가는 길엔 사람이 거의 없었음에도 정상에 오르자 사람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반은 한국인인 것 같았다. 단체여행을 왔는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가족끼리 온 사람들 등. 갑자기 한국인 비율이 높아지자 얼른 사진 찍고 내려와야지 했다.
부다페스트가 확실히 도시긴 도시이며 수도다. 굵직한 관광지들이 있고 관광객들 많다. 근데 서울에 비하면 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뭐가 많아도 너무 많고 일단 사람들이 미친듯이 몰려있지 않은가. 그리고 볼게 또 그렇게 많은 곳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있다. 하지만 확실한건 프라하에서 느낀 밀도감을 슬로바키아에서 겨우 풀고 왔는데 다시 도시로 오니 스트레스는 조금 생긴다는 것이다. 볼게 너무 많아도 문제, 너무 없어도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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