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쇼브와 브란성을 오가는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정확히는 브란성을 구경하고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성으로 갈 때와는 달리 성 주변 마을에서 주민들이 꽤 많이 탔고 중간 중간 내렸다. 나는 올 때나 갈 때나 같은 좌석에 앉았다. 일행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2+1 좌석에서 당연히 하나짜리 자리에 앉았다. 시내까지 반 정도 남았을까? 위 아래로 검은 복장을 한 젊은 수도사와 백발의 할머니가 탔다. 수도사가 먼저 탔는데 마지막 자리였던 건지 할머니가 어정쩡하게 통로에 서게 되었다.
이 때부터 착한 사람들의 눈치게임이 시작되었다. 할머니는 앞좌석 쪽에 의자 손잡이를 잡고 서 계셨는데, 그 손잡이를 보고 앉아있는 중년 여성 분이 눈짓과 바디랭귀지로 자기 자리에 앉으시겠냐고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괜찮다며 손사레를 치셨지만 도로가 곧 구불구불해져 할머니가 왼쪽과 오른쪽 의자로 살짝씩 부딪혔다. 부딪히는 모습을 보며 2개짜리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니 놀랍게도 한순간 모두 잠에 곯아 떨어져있는 모습이었다. 자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짜리 자리에 앉은 나, 중년여성, 맨 앞에 중국인 남자애 뿐인 것 같았다.
그러다 뒷자리에서 누군가 일어나 하차를 했고 중년여성이 가까운 자기 자리에 앉으시고 본인이 뒷자석으로 가겠다고 하는 몸짓을 했고, 결국 그렇게 할머니가 위태롭게 이리저리 흔들리는 광경이 끝이났다. 10분이 채 안되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앉지 못한(않는) 상황은 깨어있는 모두를 불안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맨 앞에 앉은 중국남자애와 중년 여성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쉴새 없이 나를 쳐다보았고, 할머니는 하차하는 와중에 본인의 가방을 내 무릎에 스치면서 내 얼굴을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훑고 갔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고 쉬면서 버스에서의 일이 계속 이상하게 되새김질되었다. 마치 그 상황에서 내가 굉장히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계속 쳐다본 깨어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양보할 거라고 생각한건지? 근데 일어나지 않자 '어떻게 동양인 여자애가?' 하게 된걸까? 그 할머니는 내가 일어서지 않은 것에 대해 끝내 정말 괘씸한 기분이 들었던 걸까? 가끔 풍경을 보며 수다를 떨던 2인석 자리의 사람들은 어째서 할머니가 타자 마취총을 맞은 짐승마냥 한순간에 곯아 떨어졌을까? 이 모든건 우연인의 일치인걸까? 아니면 유교국 출신인 나 혼자 죄책감으로 그린 상상인걸까?
누가 나에게 친절을 맡겨 놓았나?
육감은 사이언스다. 나는 이 일이 내가 양보하며 일어서지 않은 죄책감으로 그린 상상의 분위기가 아니라고 본다. 유교걸이 이런 상황을 원데이 투데이 경험해온게 아니지 않나. 엄마 배 속에서부터 체득해온 '착한여자 콤플렉스'가 그 상황에서 120% 작동했으며 내가 양보하길 바라는 눈망울과 공기의 흐름이 빨리 엉덩이를 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양보를 하라고 나를 들어올리는 것만 같았다. 사회적약자를 우선 배려해야한다는 도덕책스러운 내 원래 사고방식도 지금 뭐하고 앉아있는 거냐며 머리에 경종을 울려댔다. 비상이다 비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있다니.
모르겠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시라고 했을지도. 주변이 한남 뿐이고 나 혼자 여자였어도 말이다. 어쨌든 할머니가 앉지 못하고 계시니까. 하지만 순간 나는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양보하는 사람이 내가 되는 순간 나, 돌고래란 사람이 호구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양인, 특히 동양인 여자애라는 계층을 '유교문화로 인해 눈치껏 자동으로 양보해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만드는 데에 한 몫 얹는게 치가 떨리게 싫었다. 거기에 오 어느나라 사람이래? 한국사람이래! 하게 되면 나는 무슨 짓을 하게 되는 걸까? 안 그래도 좆창난 한녀 인권 전세계적으로 바닥으로 떨어트리기? 글로벌한 공간에서 비한국인들의 행동이 마치 친절 한 다스를 맡겨 놓은 것처럼 흘러나오도록 일조하기?
오오. 그럴리가. 절대. 네버. 나는 양보라곤 일체 모르는 표정으로 포커페이싱했다. 마음의 한 켠은 유교적인 관성과 새로운 한녀의 자아가 마구 싸웠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사적인 투쟁을 하고 온 상태라 관성이 이기게 놔둘 수 없었다. 당연히. 그 할머니가 내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그 표정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국적, 인종, 문화가 다른 사람이지만 그 얼굴이 말하는 뜻을 충분히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지어서도 안됐다. 더 이상 이런 상황에 자동으로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되기 싫었고 그들이 다음에 만나는 동양인 여자애를 봤을 때 똑같은 기대를 하게 놔둘 수 없었다.
사회적 약자(특히 연장자) 앞에서 이기적일 수 있는 동양인 여성이 얼마나 될까. 이기적인+동양인+여성 이라는 조합은 얼마나 보기 힘든 조합인가. 반대로 이기적인 백인 남성은 얼마나 흔하고 그들의 생각 없는 행동은 얼마나 가시적이지 않는가. 반면 이타적인 백인 남성은 얼마나 가시적인가. 얼마나 훈훈한 시선과 젠틀하단 평을 쉽게 얻는가.
돌이켜보면 정말 별 거 아닌 것으로 혼자 온갖 망상과 의미부여를 다 한 것 같지만, 내 판단이 맞던 틀리던 결론적으론 후회하진 않는다. 그들에게 양보라곤 해 본 적 없는 것 같은 동양인으로 비추어졌다면 환영이고 미션 성공이다. 앞으로도 사회적약자가 그들 사회에서 마음의 불편함과 양심의 가책을 자꾸 만들어내어도 동양인, 특히 동양인 여성에게 미루지 말고 그들끼리 알아서 잘 해결하길 바란다. 한녀는 어쩌면 너희가 평생해도 못 따라갈 양보라는 걸 해왔으므로 업보가 쌓일대로 쌓여서 천국행 티켓이 이미 수십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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