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간 (자칭)코로나 청정지대인 터키에서 큰 위압감 없이 여행을 끝내고 방금 알바니아 티라나(Tirana)에 도착하니 새삼 이 바이러스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는걸 체감한다. 터키는 공항을 제외하면 비교적 아직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해피한 분위기였어서.
그래. 공항은 워낙 사람이 밀집되어있으니까 서로 경계하고 군중의 반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하는게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티라나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대에 도착하는 순간 아, 나 정말 위험해보이는구나. 이건 체감이 아니라 절감이다. 이미 하루치 스트레스가 차고 넘쳐보이는 심사원은 '허.. 꼬레아.' 하더니 공격적으로 간단한 질문을 쏟아냈다. 알바니아엔 처음이냐 왜 왔냐 친구있냐 친구 없는데 왜 왔냐 뭐할거냐. 체온도 정상, 답변도 정상이니 거부할 포인트가 없었는지 상주의사인지 윗책임자인지 고래고래 소리질러 부르더니 심각하게 토의를 했다.
결국 내가 예약해놓은 숙소 정보를 받아적었고 기록을 한 뒤 데스크에 내 여권을 휙 집어던지고 '꺼져 꺼져' 하는 듯한 제스쳐와 말로 통과시켰다. 터키공항에서 부팅닷컴 숙소 예약서를 미리 이미지로 다운로드 해 놓았어서 천만 다행이다.
위탁으로 붙였던 내 큰 백팩은 레인커버가 홀랑 벗겨진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권에 알바니아 입국 도장이 없어 공항 직원에게 질문하러 갔더니 '킵 디스턴스' 하면서 멀찍이 떨어져서 답해주었다. 전산상으로 남기기에 안 찍는단다. 여전히 이해는 안되지만 응 그렇구나 하고 나왔다.
숙소에 안전하게 도착해서는 호스텔 주인의 질문을 한바탕 풀어주어야했다. 너 대체 어떻게 여행을 해 온 거냐며. 한국은 괜찮냐며. 너 여기서 뭐할거니. 우리도 몇일 전에 확진자 2명 나왔어. 티비에선 최대한 집에서 지내라고 그래.
상황이 이러니 하루 빨리 귀국을 하는게 맞는걸까 갑자기 두려워진다. 호스텔 주인은 뭘 물어도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이라고만 한다. 앞으로의 발칸국가 그러니까 지금 있는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북마케도니아는 모두 주한 대사관이 없다. 귀국을 안 할 거라면 대사관이 있는 세르비아로 빨리 이동을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일을 당하면 조치를 받을 수 있으니까.
터키 이즈미르에 있을 때 전망대에 갔다가 높은 곳에서 날라오는 돌에 맞을 뻔 한 적이 있다. 일곱여덟살 쯤이나 될 꼬마들이 코로나! 치나! 하면서 던진거였고 운 좋게도 맞진 않았기에 뻐큐를 날리고 끝났지만, 앞으로의 국가에서 밥 한끼 못 사먹을 정도로 나를 거부하면 어쩌나 갑자기 걱정된다. 오늘 아침 터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두번이나 길가에 유리병이 떨어졌던게 생각난다. 창문에서 누군가가 던진 것일 텐데 맞히려고 했던게 혹시 나였는지 괜히 또 진지하게 추정해본다.
내일 아침은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녀야겠다. 이 시국에 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이 나라에 민폐를 끼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았고, 진지하게 여행 중단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불을 덮는다. 모바일로 글 쓰는것 안 좋아하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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