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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루마니아 - 부루레슈티, 너 정말 못 생겼구나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20. 2. 18.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면서 항상 느꼈던 것이 있다. 어지간한 수도는 서울을 능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시의 크기라던지 인구수를 가늠하면서 다닌 적은 한 번도 없고 개념도 잘 없는 편이지만, 러시아 모스크바를 제외하고는 서울의 면적이나 인구수, 밀집도보다 큰 도시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수도를 방문할 때마다 내가 정말 굉장한 나라에서 살다 왔구나 깨닫고 있다. 루마니아는 처음으로 수도로 들어가지 않은 도시여서 부쿠레슈티에 들어갈 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클루지나포카, 투르다, 브라쇼브, 시나이아 등을 먼저 경험해보면서 루마니아는 참 각 도시가 특색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수도는 어떨까하는 기대가 좀 있었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이렇게 못 생기고 삭막하다

  부쿠레슈티에 해가 완전히 진 늦은 저녁에 도착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숙소는 기차역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잡았다. 역 주변에 Kaufland와 까르푸가 있었기 때문에 참 잘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광지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꼭 타야하는 거리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클루지나포카, 브라쇼브와 교통권 시스템이 완전히 달랐다. 버스와 트램을 커버하는 교통권이 따로 있고, 지하철표는 또 따로 구매해야했다. 이것을 몰랐던 나는 당연히 버스정류장 주변에 티켓오피스가 있거나 최소 티켓판매기가 있겠지하고 나왔다가 워킹투어를 놓쳤다. 숙소 주변에 내가 이용해야 할 정류장엔 길거리 음식판매대만 있었다. 

  지하철 역으로 가면 뭐라도 있겠지하는 마음에 가장 가까운 역까지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워킹투어는 오늘 물 건너갔으며 갑자기 갈 곳을 잃은 나는 투르다의 아버지, 씨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어디 주변에 국립도서관이 있어. 관광으로 지치고 평화가 필요할 때 가보는 것도 좋아. 나는 가끔 가서 아무데나 앉아 책을 읽다오고 그랬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리투아니아 등) 나 역시 이유 없이 구경을 가고 했던 터라 흘려들었던 말이었는데. 오늘 갈 수 있는 곳이 국립도서관밖에 없다니. 스스로도 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30분 정도를 공사판과 8차선 도로가를 걸은 상태에서 관광객모드로 계속 돌아다니는게 벌써부터 짜증이 났다. 지하철역 주변에서 버스티켓오피스를 찾았고 거기서 3회권을 3장 사버렸다. 그리고 코 앞에 보이는 버스를 타고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실은 더 걷기 싫은 상태에서 어딜 갈 수 있을지를 요 앞에 다니는 버스 위주로 찾아보다가 국립도서관이 얻어걸린 것.

그래 오늘은 도서관 관광이다. 외향인이라면 절대 관광하지 않았을 곳.

  입구에서 너 누구야 왜 왔어로 덜컥 가로막혔지만 곧 여권 사본을 보여주고 다른 직원이 내려와 나를 심사하고는 들여보내주었다. 직원은 로비에 루마니아 독립기념 사진 전시회가 있으니 보라고 알려주었고, 책을 빌려 읽고 싶다면 저쪽에 가서 이용권을 발급받으라고까지 친절히 알려주었다. 직원의 친절함에 얼떨결에 저리로 가 한 달짜리 이용권을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책을 빌릴 것 같진 않았지만 다른 직원이 또 나한테 너 누구니 물어보면 당당하게 딱 보여주면 프리패스될 것 같아서였다. 정말 웃긴 사람이롤세.

  이용권을 만든 이유 또 하나는 루마니아에서 조금 더 지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는데, 수도가 아랫쪽에 위치하는 바람에 마지막 도시인게 조금 아쉬웠기 때문이다. 더 지내면서 이 조용한 곳에서 책도 읽고(영어책이 분명 있을 테다) 글도 많이 쓰면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사진에서도 조금 나오는데, 각 층마다 넓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가 충분히 배치되어있어 누구나 앉아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화장실과 와이파이는 당연 훌륭했고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커피자판기와 군것질자판기도 있었다. 

  테이블 한 구석을 차지한 나는 당장에 계획을 세웠다. 내일 노트북을 들고 와야지! 내일은 아침 먹고 여기로 바로 와서 글 좀 쓰고 오후에는 워킹투어를 가야겠다라고. 그리고 가볼 만한 곳을 좀 더 찾아본 후에 영어책을 건드려볼까 해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용하던 열람실스러운 곳은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읽고 싶은 책을 사서에게 일련번호를 검색해서 제출하면 사서가 찾아서 건네주는 방식이었다. 이 책 저 책 건드려볼 수 없다는 이야기. 음 그럼 여기가 왜 도서관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시스템을 이해하자마자 바로 포기해버렸다. 그래 전자책이나 읽자.

경관이 이렇게 못 생긴 도시는 처음이네

  대강의 도서관 관광을 끝내고 배가 고파 밖에 나와 근처 역까지 걸었다. 아까 아침에 걸었던 길가보다는 훨씬 시내여서 걸을만 했지만 삭막한 건물들과 차선 많은 도로들이 걷는 데 영 힘이 빠지게 했다. 날씨는 분명 좋았는데 낡고 때 탄 아이보리색 네모네모 건물들이 시선을 지겹게 만들었다. 이 도시가 나와 맞지 않는 걸까. 이렇게 관광에너지가 나지 않는 곳은 처음이다. 아니면 이전 관광지가 너무 탑클라스였어서 이런 평범한 도시 이미지는 눈에 차지도 않는 걸까.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런 것으로 새 도시 관찰에 대한 호기심이 죽는다는 건 말도 안돼. 

  그 말은 씨기에게 들었었다. 공산주의 시기 마지막 대통령인 차우셰스쿠가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을 만큼 친했는데, 그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부쿠레슈티의 본래 건물들을 다 때려 부수고 평양의 건물들처럼 지었다는 얘기. 건물의 규모들이 굉장히 크고 비슷하고 색감이 없다. 계속 되는 생각, 이것은 회색도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도시가 너무 몬생겼다!!! 아아악 너무 못 생겼어! 

사진 찍을 맛이 안 나서 첨부할 사진이 없네. 버스티켓오피스를 첨부한다. 운영시간이 정해져있어 구입해놓지 않으면 낭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