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불가리아 첫인상 - 어떤 집시가족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20. 2. 24.

  초딩 때는 어쩜 그리 빙고게임을 많이 했었는지. 다들 습득한 작은 지식들을 서로 자랑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꼭 종이에 5x5칸을 만들지 않더라도 아는게 바닥날 때 까지 무엇무엇 이름대기 게임은 누구랑 하느냐, 얼마만에 또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달라져 끝 없이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구본 보는 것을 좋아했어서 나라, 수도이름대기를 가장 좋아했었다. 남들이 모르는 나라나 수도를 몇 가지 외우고 있으면 곧잘 이길 수 있었다. 불가리아, 소피아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몇 개의 다크호스 중에 하나였다. '위에서 장까지' 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남땡유업(그렇다. 여혐범벅에 온갖 갑질을 계속하며 소비자와 대리점을 우롱하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그 기업)의 불가리스라는 제품 덕분에 몇몇은 불가리아라는 나라를 알고 있었지만 거기 수도가 소피아라는 것을 아는 아이는 나 밖에 없었다. 결론은 남들은 잘 모르는데 이름이 예뻐 그냥 호감으로 생각했던 곳이었다.

 하지만 루마니아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 기차로 갈아타고 나서는 어렸을 적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미지는 와장창 깨졌다. 아마도 그 광고 때문인지 그저 푸른 초원에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과 젖소, 그리고 많은 요거트 제품들? 뭐 이런 것들은 일단 접어야했다. 갈아탄 기차 좌석에 앉자마자 복도를 놀이터처럼 뛰어다니고 있던 집시 아이들이 새 승객을 찰떡같이 알아보고 문을 열고 먹을 것이나 돈을 달라는 말을 하며 계속 다가왔다. 아마도 엄청난 다자녀가족인지 엄마나 이모로 보이는 사람은 먼 칸에 있는 것 같은데 5살난 꼬마부터 10살은 되보이는 애들까지 한 4명은 나를 왔다 갔다. 같은 방에 타고 있던 불가리아 아저씨가 썩 꺼져! 하는 듯한 말로 호통을 치자 나가는 애도 있었고, 결국은 엄마 손에 이끌려 나간 애도 있었다.

  그 아저씨가 간단한 불가리아 인삿말을 알려주었는데 좀 친해질 쯤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하차해버렸다. 그 후로 4시간 정도 나 혼자 소피아까지 갔는데 이 중 2시간 정도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그저 해맑게 기차 안을 뛰어다니고 매번 실패하더라도 구걸을 일상처럼 하는 그 아이들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들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통제가 되지 않는 애들을 꾸짖는 건지,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운 절규에 가깝게 변하고 있었다. 곧 갓난아기 우는 소리가 더해졌고 나는 그 때부터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즐거워 보이던 아이들의 얼굴 표정도 구겨지거나 울면서 엄마가 있는 칸으로 추정되는 쪽으로 다가갈듯 말듯 서성거리는지 복도에서 보였다가 안 보였다를 반복했다. 

  그 엄마의 절규가 온 기차통을 울려서 다른 칸에서도 이게 무슨 일이야? 하는 듯한 웅성거림이 조금 들렸다. 하지만 절대 승무원은 상황 파악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 같진 않았다. 이러다 기차가 가다가 마는 건지, 애들 중 한 명이 뭔가 잘못 된건지, 응급의료진이 와야하는건 아닌지 상황이 무척 궁금했지만 내가 있던 칸 밖을 나가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이내 기차 문이나 벽을 쿵쿵 치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화인지 절규인지 아무튼 그 감정이 극에 치닫고 있는게 분명했다. 

https://youtu.be/gnnnyAm7YtA

여행 중 갑자기 다큐

 

  아까 끈질기게 내 옆에 앉아 송아지같은 눈망울로 구걸하던 아이가 뒷걸음치며 눈물 콧물 가득한 얼굴로 뒷걸음질치는 걸 보고서는 아까 뭐라도 줄걸하는 후회가 괜히 밀려왔다. 이런 상황이 일상인 애들이라면 낯선 이의 가끔의 호의는 얼마나 기쁜 일일지. 그렇게 호의를 얻어와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얼마나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할 것이지 눈에 선했다. 이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실제로 루마니아에서도 엄마 집시가 구걸에 실패하자 어린 딸을 나에게 출동(?), 아니 밀면서 구걸 시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언제나 끝나려나, 소피아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는 걸까 두려워질 때쯤 절규소리가 줄어들고 역으로 아이들을 챙겨 하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차가 그 역에서 출발할 때 창문으로 그들을 볼 수 있었는데, 엄마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엄마의 곁에, 어떤 아이는 두세발짝 떨어진 곳에서 역시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 후로 2시간 정도 소피아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 일 없이 평온하게 달렸다. 하지만 그 절규와 아이들의 울음 소리는 소피아에 도착하고 나서 숙소에 잠이 들 때까지 머리에서 잘 가시지 않았다. 전반적인 나의 불가리아 경험은 분명히 긍정적이고 밝은 편이지만 한편 이런 문제가 현저히 남아있다는 것은 조금 슬프기도 하면서 더 궁금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진심으로 그 아이들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그들은 분명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