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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불가리아 - 소피아, 플로브디브 (Sofia, Plovdiv)

by 그림그리는돌고래 2020. 3. 7.

어렵게 도착한 국립역사박물관

  소피아에서의 카우치서핑은 알렉스였다. 루마니아에서 클루지나포카에서 신세를 졌던 집도 알렉스였는데. 중성적으로 쓰이는 이름인가보다. 내가 30분 정도 늦는 틈을 이용해 알렉스는 잠깐 장을 봐왔다. 릴라수도원에서부터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어서 무지 배고프다고하자, 그럼 집에가서 뭘 만들어먹지 말고 집 근처에서 사먹자고해서 푸짐하게 시켜먹었다. 그는 건설현장에서 상수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집까지 가는 길에 그의 인생 처음으로 완성시킨 건물을 지나칠 수 있었다. 호스트를 고를 때 이런 면 때문에 컨택을 한 것도 있었다. 호스팅 경험이 없어 수락이 쉬울 것이라는 예상으로 메시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일부러 서비스나 교사, 경영과 같이 흔한 사무직이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도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파트는 주차장에서 조금 먼 끝 동이라서 꽤 걸어야했는데, 갑자기 우박이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상치않은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홀딱 젖는 것은 여행 중 거의 처음이었으며 우박은 더더욱이나 더 처음이어서 당황했다. 온몸이 젖자 곧 감기가 들것 같았다. 동거하는 친구 미하일과도 짧게 인사를 하고 바로 샤워를 해버렸다. 우리는 잠깐 유투브로 노래를 들으며 수다를 떨고나서 곧 취침했다. 비교적 새 아파트고 평수가 넓어서 그들은 각자의 방에서 자고 나는 거실 카우치에서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서 눈을 뜨자 상황이매우 난감했다. 우박 후에 눈이 계속 내려 상당히 쌓여있었고 폴란드에서 맞았던 비처럼 누군가 옆에서 분무기를 계속 뿜어대듯 이번엔 눈이 쉴새없이 얼굴을 때리는 정도였다. 더군다나 알렉스의 집은 시내에서 꽤 떨어져있어서 알렉스의 추천대로 원형모양의 도심에서 꽤 떨어져 위치한 국립박물관이 그나마 갈 만한 곳이었다. 그냥 집에서 콕 박혀있을까 싶다가도(집순이의 습성임) 어쨌든 발걸음을 떼야 후회를 안할 것 같아서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했지만 첫번째 버스는 기사님이 공짜로 큰 도로까지 태워주셔서 그나마 덜 힘들었다.

  나에게 우산은 없었고 비닐우비는 있었기에 눈을 맞는 와중에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힘들게 도착한 박물관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타이틀에 비하면 볼 만한 것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박물관 자체는 상당히 아름다운 편이었다. 설명이 필요한 역사부분은 새롭게 꾸며졌는지 다양한 그림과 도식으로 표현되어있었다. 나는 복식부분이 역시 재미있어 최대한 꼼꼼히 읽었다. 컬러풀한 전통복장 디자인과 색에 결혼의 유무나 지위같은 것을 나타냈다고 하던데 서로의 복장을 보며 그걸 다 해석했을 옛날사람들을 생각하니 참 신기했다. 박물관 직원이 아무래도 나를 어린이로 본 것인지(?) 저쪽가서 재밌는 지역 복장 맞추기 게임하라고 알려줘서 얼떨결에 마그넷들을 붙이고 왔다.

갑자기 태권도를 뽐내는 알렉스의 동거남. 

  시내에 들러 꼭 먹고 싶었던 불가리아식 샐러드인 찹스카 샐러드를 사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 손님이 있었다. 알렉스의 동거남의 12살 어린 여친이었다. 이들이 각자 요리를 준비하길래 나도 뭔가 맛보여주어야겠다 싶어서 미역과 고추장으로 미역무침을 만들었다. 알렉스는 디저트로 카카오볼을 준비했다. 스시에서 고명으로나 봤을 미역쪼가리를 한움큼씩 집어먹는 것이 영 이상했는지 미역무침은 인기가 없었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한국음식을 들고다닌게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맥주도 마셔가며 수다를 떨었는데 대부분 그들끼리 불가리아로 떠들어서 약간 어색했다. 알렉스와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근데 12시쯤 다 되어 미하일과 여친이 방으로 들어가자 알렉스가 눈치를 챘는지 말을 계속 붙여주었다. 그리고 선물이 있다며 붉은 실팔찌를 주었다. 그 의미가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것인지, 이스터축제와 관련있는 것인지는 까먹었다. 아무튼 지금도 내 왼쪽 팔목에 있다.

버스회사가 굉장히 다양한 소피아 버스 터미널

  다음날 나는 소피아 도심으로 다시 돌아가 반납하지 못했던 호스텔 현관키를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서야 터미널로 갈 수 있었다. 터미널에 딱 들어서자마자 당황을 했는데 20여개 정도 되는 버스티켓 창구가 촤라락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래서 불가리아에도 플릭스버스가 없구나. 다음 여행지인 플로브디브(Plovdiv)로 가는 버스를 물어물어 티켓을 샀다. 

아니 구매하자마자 찢어버리실거면 대체 왜 주나요?

  플로브디브에서는 버스를 타면 표값을 받는 직원이 따로 있고 돈을 내면 표를 바로 찢어서 주어서 처음엔 갸우뚱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시스템이지만 일단 올라타면 직원이 새 승객을 알아보고 다가오기에 곧 편하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서는 딱 1박을 했는데 약간 헝가리의 데브레첸같은 느낌이었다. 상당히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도심에 로마시대 유적지가 있긴 했다만 규모가 어중간해서 방치되는 느낌으로 관리되는 것 같았다. 큰 중앙우체국이 보여 루마니아에서 부치지 못한 편지를 하나 보내고 시내를 어슬렁거렸다.

붉은 실팔찌를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좌). 저 우체국벽에 뚫린 international 구멍에 작은 소포를 넣었다.

  다음 날 아침 뭐라도 보고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뒤지니 박물관 거리가 있는 듯 했다. 멋진 고택을 하나 둘러보고 핸드메이드샵들을 지나쳐 다시 숙소로 와서 짐을 챙겼다. 체크아웃시간이 정오라니 정말 좋은 곳이다. 터미널에서 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 둘러보니 컵옥수수를 파는 것이 보였다. 제일 작은 컵을 하나 사서 대합실에서 앉아 오물오물 먹으니 살짝 행복해졌다. 비록 세번째 숟갈에서 돌돌 말린 거미를 발견했지만 푹 쪄서 나온 것이니 죽을 일은 없겠지하며 다 먹고 출발했다.

사실 루마니아에서부터 먹고 싶었다.